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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ut photography



놀랍다. 감상문을 쓰게 할 정도의 생각이 드는 연극은 처음이다.

원작인 '조만득씨'는 읽지 않았고, 연극만을 보고 떠오른 느낌을 적는다.


※내용 누설이 있다.


주인공 조만득씨는 이발사다. 조만득씨는 자신을 기업 회장이라 착각한 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종이조각에 백지수표를 남발하는 등 기업 회장처럼 행동하다가, 결국 의사의 치료를 받고 현실로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간 현실은 너무 참혹해, 견디지 못한 조만득씨는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행복한 망상마저 하지 못하고, 조만득씨의 자아는 완전히 붕괴되어버린다.


한 개인의 비극을 그린 연극이지만, 그 뒤에 사회비판의 메세지가 가득 느껴진다.


먼저 질문을 던지자. 극의 주인공, 조만득씨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감시카메라가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낯선 사람을 안기부 직원이라 의심하는, 시인 정신병 환자가 있다. 아마 이 연극의 시대배경에는 실제로 안기부가 존재했으며, 이 사람은 독재에 항거하는 문학활동을 하다 입원했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미쳐가는 시대였을 것이다.


조만득씨와 그 가족들을 관통하는 갈등은 돈이다. "천장에도 돈! 벽에도 돈! 바닥에도 돈!"하고 외치는 조만득씨의 절규는 처절하다. 조만득씨의 가족관계는 돈이 없어 파탄난다. 조만득씨는 돈을 벌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이고, 아내는 돈을 잘버는 사업가와 바람 났으며, 동생은 계속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 협박한다. 

돈이 아니면 안되는 시대, 가족간의 관계조차 돈으로 파탄나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순박했을 섬마을 출신 조만득씨의 비극은, 정말 그 개인의 문제인가?


정신병원 안에는 종교에 빠진 사람도, 예술에 빠진 사람도, 체육활동에 빠진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이 여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가 미쳐돌아가서, 어디엔가 빠지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을 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본인의 과거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사람도 있다. 그 폭력의 가해자인 부모조차 그 어두운 시대의 피해자일 것이다.


한편, 연극 속 TV에서는 재벌들이 천문학적 금액을 물쓰듯 쓰고, 연극 속 광고에서는 늘씬한 선남선녀가 화장품을 선전한다. 연극 속 백화점에는 굉장히 비싼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

연극에 나타난 사회 어디에서도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다. 조만득씨가 인간성을 찾은 곳은 오히려 정신병원 안이었다.

끝까지 회장님이라 불러주며 꽃관을 씌워주는 소녀, 마음 아파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던 간호사, 인간성은 그 안에 있었다.


의사는 결국 조만득씨를 치료해내는데 성공하고, 집으로-사회로 다시 돌려보낸다. 간신히 용기를 내 집으로 돌아온 조만득씨는, 도망간 아내, 치매에 걸린 어머니라는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견디지 못한 조만득씨는 절규하며, 결국 어머니를 본인의 손으로 살해한다. 극의 초반부터 어떻게든 어머니를 모시려던 모습에서 보이던, 조만득씨의 인간성이 붕괴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조각난 조만득씨를 보는 의사는 '나 자신도 사회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라 독백하며, '인간성 없는 사회'의 인물이었음을 관객에게 알린다.


연극 속, 이 처참한 비극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미쳐돌아가는 사회 속, 지켜야할 가치를 잃어버린 개인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부모에 대한 사랑도 없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없다. 부부간의 사랑도 없고, 형제간의 사랑도 없다. 돈에 의한 갈등이 있고, 돈에 의한 비극이 있다.

연극 속 '안기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 연극의 시대배경은 분명 1960-80년대 어디쯤일 것이지만, 연극이 끝난 후 가슴 한 켠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조만득씨는 연극 속의 사람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조만득씨가 살고 있는 사회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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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Lee Hanul, Narsilion Photography _architecture, urban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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